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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바닷속 보물을 찾아서...인천 영흥도에서 누리안호를 만나다


수중바닷속 보물을 찾아서...!

인천 영흥도에서 누리안호를 만나다

지난 7월 19일 인천광역시 옹진군 영흥도 해역에서 고려 시대 침몰선 발굴 조사를 진행 중인 누리안호를 찾았다. 이 날은 영흥도 발굴조사 마지막 날로 성공적으로 발굴 조사를 진행한 누리안호는 다음 날 영흥도에서 철수할 예정이었다.

마도 3호선 발굴

인천에서 출발해 시화방조제를 건너 대부도를 가로지른 후 선재대교와 영흥대교를 건너 영흥도에 도착했다. 섬을 건너고 건너 영흥도로 가는 길은 한적하고 여유로웠다. 영흥도 선착장에서 누리안 호가 수중발굴 작업 중인 곳까지는 씨 뮤즈호를 이용해 40분 정도가 소요됐다. 영흥도 수중문화재 발굴 마지막 날을 기념해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소재구 소장을 비롯한 직원들이 누리안호를 방문했고 여러 언론사에서 취재에 나섰다. 
    
위풍당당 누리안호

누리안호
누문화재청 소속의 누리안호는 아시아 최대 규모(290톤)의 수중 발굴 및 인양 전용 선박이다. 2010년 건조를 시작해 2012년 12월 취항하였고,지난 6월 시작된 영흥도 수중발굴조사가 누리안호가 투입된 첫 작업 현장이었다. 다이빙 장비, 유물의 인양 보관 설비는 물론이고 감압 챔버, 수면까지 인양한 대형 유물을 선체로 끌어올리기 위한 크레인 2대, 바닥에 쌓인 흙을 걷어내는 제토설비 등을 갖추고 있다. 누리안호에는 민간 다이버 4명, 연구원 3명, 선박직원 8명 등 조사단 20여 명이 탑승할 수 있다. 1층에는 유물 발굴을 위한 각종 장비들이 설치되어 있고,2층에는 컨트롤 센터가 위치한다. 컨트롤 센터에서 수중에서 다이버들이 활동하는 모습을 모니터링하며 공기 공급, 제토 작업 등 수중 작업에 필요한 모든 상황을 컨트롤한다. 누리안호의 정박지는 태안에 있는데 한번 출항하면 20여 일을 해상에서 머물 수 있다.

영흥도 발굴 작업모습

영흥도 발굴 작업
2010년 영흥도에서 고려청자가 발견, 신고되어 조사가 시작됐다. 고려 시대인 12세기 말 경의 길이 20~30m상업용 목선이 침몰한 지역으로 철제 솥, 고려청자, 배 외벽 조각 등을 포함해 총 800여 점의 유물이 발굴됐다. 발굴된 유물은 태안의 연구시설에서 후처리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날은 두 달 여간 진행된 발굴 작업의 마무리 작업으로 선체와 유물의 인양이 이뤄졌다. 조류가 약한 때에 맞춰 다이버들이 두 팀으로 나누어 입수를 했다. 다이버들은 4개의 케이블을 헬멧에 연결한 채 물속으로 들어갔는데 노란 케이블은 공기를 공급하는 것이고 회색은 수심 체크 게이지, 나머지는 라이트와 CCTV 케이블이었다. 다이버들의 머리에 장착된 CCTV를 통해 수중 작업의 모습이 모두 컨트롤 센터에 전송됐다. 컨트롤 센터에서는 작업 전체를 조망하며 지휘했다.
다이빙에 사용되는 헬멧과 각종 케이블

첫 번째 팀이 먼저 선체 조각을 수면으로 리프트 시켰다. 크레인으로 수면에 내려진 긴 운반대에 선체 외벽을 고정시키고 배 위로 끌어올렸다. 발굴된 조각은 배 옆면 3조각으로 배 전체의 10~15%에 해당하는 면적이라고 한다. 배가 침몰해 가라앉은 후, 그 안에 실린 철제 솥에 눌린 부분만 고정되어 남고 나머지는 모두 떠내려간 것으로 추정된다. 선체 인양 후 곧 고려청자, 철제 솥 등의 유물도 차례로 갑판에 올려졌다. 나무 몇 조각의 모습으로 배 전체의 모습을 상상하기는 어려웠지만 바다를 누비며 교역했을 고려 시대의 배를 만난다는 것이 놀라웠다. 오랜 시간 바닷물과 진흙에 잠긴 채 숨죽이고 있던 옛 시간의 흔적들이 800여 년 만에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는 공기를 마주한 것이다.

수중발굴 다이빙
과거 서해안을 따라 중국, 일본과 교역이 주를 이루었던 터라 대부분의 유물 발굴 작업 또한 서해안에서 이뤄진다. 서해안 하면 떠오르는 탁한 시야. 과연 그런 곳에서 발굴 활동을 할 수 있을까? 뭐가 보이기는 할까? 시야는 잘 나오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가끔 시야가 빵 터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열심히 작업을 해야 하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서해에서 빵 터진 시야는 대체 얼마냐는 질문에는 “50cm 정도요"라는 웃지 못 할 대답이었다. 때론 시야가 없는(?) 상황도 있다고 하며 손으로 더듬어 작업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발굴 과정이 쉽게 이루어질 수 없음을 느끼게 하는 말이었다.
다이버의 헬멧에 장착된 CCTV를 통해 컨트롤 센터로 전해지는 수중 작업 모습
발굴된 유물은 꼼꼼히 포장되어 태안의 보존센터로 이송된다
수면으로 인양된 선체 일부

수중유물 발굴
수중유물의 조사 발굴 작업을 하기 위해선 먼저 어디에 어떤 유물이 있을지에 대한 단서가 있어야 한다. 이런 단서가 되는 유물은 어떻게 발견될까? 먼저 수중 구조물을 설치할 때는 수중 지표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바다에 다리를 건설할 때 수중 지표조사를 의무적으로 하게 되어 있다. 또 저인망어선을 이용해 어로활동을 하던 70~80년 대에 신고된 지역 250여 곳 중에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탐사하기도 한다. 역사의 기록을 통해 과거 특정 활동이 있던 곳을 찾기도 한다. 스쿠버다이버들의 활약도 중요하다. 물속에서 옛 시절의 물건을 발견한다면 그것을 들고나와 문화체육 관광과, 박물관, 경찰서,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등에 신고를 하자. 최대 1억 원의 포상을 받을 수 있다.
철제솥과 발굴된 고려청자와 그릇들

역사와 바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 역사의 많은 순간들이 바다를 무대로 이루어졌다. 왜군과 맞선 이순신 장군의 업적이나 해상 왕 장보고의 활약, 삼별초의 항쟁 등 전쟁과 국토수호의 순간들은 물론 중국, 일본과의 교역도 주로 바다를 통해 이뤄졌다. 바다속에는 아직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많은 과거의 흔적들이 묻혀 있다. 우리 바다 속에서 더 많은 과거의 이야기들을 끌어올릴 때 우리는 더 큰 우리 자신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진도로 이동하여 명량해전지를 조사 중인 누리안호의 새로운 활약을 응원하며 그곳에서 발굴될 역사의 이야기를 기대해본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수중문화재를 조사, 연구, 전시하는 국가 기관으로 1976년 신안 해저 유물 발굴을 계기로 “목포보존처리장"이 개설된 이래 목포해양유물보존처리소에서 국립해양유물전시관으로, 다시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로 이름이 바뀌어가며 기능을 확대해나갔다. 신안선에서 시작된 수중발굴은 최근 영흥도까지 이어졌고 섬 조사와 수군진 조사 등 해양문화유산에 대한 조사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또한 전시 교육 활동도 꾸준히 벌이고 있다.
라이트와 CCTV 등이 장착된 헬멧을 착용한 다이버
컨트롤 센터에서는 모니터를 보며 전체 작업을 지휘한다
성공적으로 영흥도 발굴 작업을 마친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직원 및 취재진과 함께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주소: 전남 목포시 남농로 136
시설 내용: 상설전시 4실, 기획전시 1실, 어린이 해양문화체험관 1실 등

태안보존센터
주소: 충남 태안군 근흥면 신진대교길 101
시설내용: 교육연구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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