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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복의 수중세상 엿보기 - 겨울바다, 힘찬 탄생의 계절

참복의 수중세상 엿보기
겨울 바다, 힘찬 탄생의 계절
Active Birth Season at the Winter of East Sea


산란 중인 도루묵의 모습

육상 기온이 영하를 넘나들고, 흰 눈이 소복이 내려 앉으니 마치 온 세상이 얼어버린 듯 고요함 마저 느껴지는 추운 겨울이 강원도 동해안에도 찾아왔다. 사람도 주머니에 손을 넣도록 만드는 강추위에 조용히 펼쳐져 있는 바다는 속 마저 얼어버린 듯 무심하지만 그 속에서는 실로 엄청난 자연의 변화가 태동하는 시기가 바로 겨울이다.

올 겨울에도 예외 없이 엄청난 숫자의 도루묵 무리가 깊은 곳에서 시작하여 점차 얕은 해안가에 이르고 있다. 그 험난한 종족번식의 숭고한 의식을 위해 또다시 켜켜이 도사리고 있는 온갖 장애물들을 인해전술로 극복하고 있다. 이중 삼중으로 가로막는 그물과 집중적으로 드리워진 통발들그리고 포식자들의 위협에 희생 당하면서도 결국 많은 숫자로 이겨낸 도루묵 무리들은 힘겨운 산란의 과정까지 소임을 마무리하고 생을 마감한다.

지난 해 1 월 초순에 전례 없는 엄청난 규모의 도루묵들이 해안가에 당도하여 그야말로 물 반 고기 반이라는 탄성을 자아낼 만큼 풍성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필자 또한 수중에서 그들의 산란 순간을 생생하게 목격하는 행운도 경험했기에, 아직까지 그때 어두운 수중에서 느꼈던 도루묵들의 소리 없는 산란 열기가 무척이나 따듯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빈틈없이 부착된 도루묵 알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내려앉은 정치망 그물

벌써 12 개월을 채우고 나니 자연의 변함없는 예고는 또 다시 그 많은 도루묵 떼를 이곳 동해 해안가로 가도록 재촉하는 시기가 되었다.

강원도 고성에 위치한 큰 규모의 정치망이 통째로 내려 앉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유는 적당한 산란처를 찾지 못한 도루묵 무리들이 정치망에다 집중적으로 산란을 해버리는 바람에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그물이 그만 바닥으로 주저 앉았다는 것이다.도대체 얼마나 많은 도루묵들이 산란을 해놓았기에 그 튼튼한 정치망 그물이 맥없이 주저앉았다는 것인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졌다. ^^

정치망에 붙은 도루묵 알들을 촬영하는 김동식 수중촬영 감독

웬만해서는 그물 근처 특히 한번 들어서면 퇴로가 없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정치망에는 다이버가 들어갈 일이 없기에 수면에 떠있는 정치망의 테두리 줄만 보고 입수를 하는데도 긴장이 되었다 ^^;
바닥으로 내려서는데 촘촘한 그물은 보이지 않고 한참을 유영해서야 겨우 고기들을 유도하기 위해 펼쳐진 큰 그물코의 유도망이 허망하게 홀로 서있는 것을 찾았다. 그 아래 바닥에 정치망의 그물들이 널브러져 있는데 실로 그 형태는 상상이 안될 만큼 충격적인 모양을 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그물 코는 거의 보이지 않고 온통 도루묵 알들이 작은 공처럼 그물 틈을 빈틈없이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그 길이는 눈으로 보이는 시정거리의 끝까지 이어져 있었는데 언 듯 보기에도 이런 상황이라면 아무리 튼튼하게 묶인 그물이라도 바닥으로 주저 앉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 수긍이 되었다.

대체 이 드넓은 정치망의 규모,광장과도 같은 이 면적의 그물을 물고기의 알 덩어리로 뒤덮어 버릴 수 있다는 것이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가히 엄청난 규모의 도루묵 떼를 상상하게 만들었는데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이 기묘하고 알 수 없는 자연의 섭리에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물 곳곳에는 무섭게 몰려오는 도루묵 떼를 먹이로 삼고자 몰려든 검은목 논병아리들이 그 깊은 곳까지 잠수를 해서 사냥에 나섰다가 도루묵을 입에 문 채로 그물에 걸려 목숨을 잃은 모습도 보였다.

그물 가득 들어앉아 있는 도루묵들

먹고 살기 위해 위험을 감내해야만 하는 예쁘게 생긴 논병아리들의 주검들이 마음을 애잔하게 하였다. 또한 널브러진 그물 밑에 웅크리고 앉아있던 겨울바다의 전령사 대왕문어의 모습도 위풍당당하기 보다는 을씨년스러웠다. 삶과 죽음이 섞여 있는 혼돈의 세상이 우리네 삶의 조각마냥 어지럽게 느껴졌던 것이다. 살아가는 환경과 방법이 제 각각인 인간사와 다르지 않은 정치망 아래의 풍경들이 추운 계절과 맞물려 내 어깨를 움츠려 들게 했다.

산란하는 도루묵을 포식하려다 그물에 끼어 버린 논병아리

몇 날이 지나고 문득 두 달 전에 동해안에서 강원도 양양의 남대천으로 산란을 위해 거슬러 오르던 연어들이 생각이 떠올랐다. 필자는 생생한 자연의 모습들을 찾아보는 것을 좋아라 하는데 그것들을 지켜보면서 느끼는 감동들이 일상에서 경험하기 힘든 것들이라 어떻게든 그런 진귀한 모습들을 만나보려 노력하고 또 그 궁리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

내수면 관리사업소 관할의 남대천인지라 공문 내지는 촬영허가를 얻어야만 그 일대로 접어들 수 있기에 방송사의 지인을 통해 함께 촬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야만 했다. 이제 두 달이 임박했으니 그전에 진한 주황색의 알들이 이제 부화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기에 한달음에 눈길을 내달렸다.

산란된 오렌지색 연어의 알

아!감탄이 절로 나온다.
주황색 고운 난막을 찢고 힘찬 몸부림으로 세상으로 막 뛰쳐나가는 놈,아직 난막 속에서 금빛 눈망울을 초롱거리며 난막을 뚫으려 힘을 모으고 있는 놈,세상 밖에서 첫 헤엄을 치는 놈. 그야말로 앙증맞도록 예쁜 치어들의 세상을 휘둥그래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된다.

생명들은 모두 존귀하다. 그리고 신비로우며 원초적인 아름다움 그 자체이다. 잘 생기고 못 생기고는 자주 보아온 눈에 익은 우리들의 편견이 분명하듯 살아 숨쉬는 것은 동질의 존귀함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하여 이 작디작은 생명들이 험한 환경 속에서 살아갈 앞날이 걱정스럽기도 하거니와 설령 채 피지 못하고 사그라진다 하드라도 그 누구의 잘못으로 몰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보다 더 자연스러운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가다가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삶을 마감할 수 있도록 이 대자연은 그것이 섭리라고 정해 놓았을 것이기에 말이다.


동시에 부화된 엄청난 무리의 도루묵 치어


박정권(참복)
신풍해장국 대표
수중사진가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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