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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복의 수중세상 엿보기 - 도치의 산란

참복의 수중세상 엿보기 – 도치의 산란


뚝지(도치)의 알덩어리(난괴).

산란처를 찾아 만삭의 몸을 이끌고 뒤뚱거리며 헤엄치는 뚝지(도치).

수중생물에 있어서 겨울은 새 생명들을 낳아서 분주하게 보육의 과정을 거치는 중요한 산란의 계절이다.
수많은 수중생물들의 고단하고 경이로운 산란과 부화의 과정 그리고 신비한 새 생명들을 수중에서 우연히 라도 지켜보고 또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은 다이빙 취미 생활에 있어 매우 소중하고 진귀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본능적으로 산란철을 인지하고, 둥지를 틀기에 적당한 장소를 찾아 이동을 해야 하는 험난한 여정이 있으며, 결코 완벽하지 못한 자연 환경에 고스란히 적응을 할 수 밖에 없어 조금 모자란 보금자리에도 기어코 엉겨 붙어서 결국은 생존의 목적을 성사시키고야 마는 모습들이 무척이나 대견하면서 가여울 때가 많다.
그 중에는 매년 동해에 12 월 전후로 깊은 수심대에서 생활을 하다가 약 30 m 권에서부터 얕게는 수심 3~4 m 권까지 자연 암반의 후미진 곳을 찾아오는 뚝지가 있다. 볼록한 아랫배에 있는 흡반을 이용해 자신의 몸을 붙일 수 있는 곳에서 한겨울 산란의식을 준비한다.

배의 흡반을 이용해 바위에 붙어 있는 도치와 다이버.

크기는 약 20cm에서 40cm 정도에 두툼하고 큰 입과 순하게 생긴 동그랗고 까만 두 눈이 귀여움마저 느끼게 한다. 하지만 덩치에 비해 짧은 지느러미와 간결한 꼬리가 특징적이라 도치라고도 불리고, 생긴 모양이 우스꽝스러워 멍청이, 못생기고 심통 맞게 생겼다고 심퉁이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필자에게는 고슴도치처럼 자식을 끔찍이 생각하는 모정의 뜻까지 담긴 도치라는 이름이 더 예쁘고, 애틋하게 느껴져서 좋다.
도치는 날카로운 이빨이나 등가시 같은 방어나 상대를 공격할 수 있는 생김새와는 거리가 먼 다소 불리한 체형이다. 이로 인해 최대한 바위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서 그 아래에 흡반을 붙이면 거의 뒤집어진 채로 살아야 하는 태생적인 불리함을 가진 힘겨운 삶이다.

굶어가며 알들을 돌보느라 피부에 트러블이 생긴 도치 암컷

도치는 깨끗한 암반에 몸을 붙이고 동그랗고 새하얀 작은 알들을 대략 수 천 개 정도 낳는다. 끈적한 점성물질과 함께 산란된 알들을 바위에 붙이고 바로 옆에 머물며 지킨다. 산란을 하는 순간부터 주변 포식자들의 접근을 막아내야 하며, 짧은 지느러미로 쉴 새 없이 알들에게 신선한 바람을 일으켜 먼지 한 톨조차 내려앉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힘겨운 시간이 펼쳐진다. 한쪽 지느러미로만 힘겨웠는지 가끔 몸을 돌려 자세를 바꾼 다음 반대편 지느러미로 한동안 부채질을 해대는 모습에 애처로움을 가득 느껴보기도 한다.
힘겨운 포란의 시간이 15 일쯤 지나면서 알들의 색깔이 노랗게 물들어가고, 약 한 달이 가까워오면 새까만 두 눈이 또렷이 보이면서 세상 밖으로 나설 준비를 하게 된다.
약 한 달이 되어갈 즈음까지 입에 아무 것도 넣어 본 적 없이 오로지 포란 경계에만 몰두하는 어미 도치에게는 심신이 극도로 피로해지는 기간이 아닐 수 없다. 하여 결국에는 알들의 부화와 함께 어미가 삶을 마감하는 광경까지 지켜보는 순간 안타까움에 무척이나 힘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자연의 순환이기에 어쩔 수 없는 모습들이지만 신비롭고 힘들게 태어나고 한 삶을 영위하고서 또 다시 숭고하게 자연으로 조용히 돌아가는 이치야 섭리인 것을 어쩌겠는가?

까맣게 눈이 보이는 도치의 알

어쨌든 필자는 지난 겨울의 도치의 힘든 산란 여정과 40 여 일의 보육과정을 지켜보면서 자주 가까이에서 눈을 마주친 결과 후유증이 남았다. 겨울철 강원도 지역의 별미로 유명한 도치탕을 내 식단에서 제외키로 했으니 잔상이 너무 강하게 남았나 싶다. ^^;
자연에서 만나는 생명들은 작든 크든, 그 형태가 어떠하든 우리 인간과 함께 존중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범위를 크게 잡지는 않더라도 가끔 다이빙을 하면서 물속에서 만나는 무수한 수중생명들에 대해 배려하며, 여행지에서 만나 스쳐가는 인연쯤으로 라도 생각한다면 어떨까?
흔하게 마주치는 생물들, 그 수중생물들을 수중에서 만나볼 수 없다면 우리네 다이빙 여행이 얼마나 삭막해질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면 열악한 국내의 환경에서 만나게 되는 모든 동식물들이 감사하고 고맙게 느껴지게 되는 것 아닐까?

마침내 부화되어 세상에 나온 도치 새끼.



박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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